말씀을 떠난 자의 최후

             본문: 예레미야 52:1-11 

                                     

10/ 29/ 20/ 목 새벽

 

 

예례미야 52장은 예례미야 서의부록과도 같은 부분입니다. 51장으로 끝나도 하나님의 멧세지를 파악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52장을 통하여 결국은 어떻게 되는지를 그 마지막 까지 보여주는 우리를 위한 부록부분입니다. 때로는 곁들여진 부분이 우리 후세 사람들에게 더욱더 의미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부분을 눈여거 마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시드기야의 최후의 모습니다. ‘16개월을 예루살렘성에서 버팁니다그러다가 결국 성벽이 무너지면서 그날밤 성벽사이 비밀통로로 시드기야 왕은 가족과 대신들과 함께 도망칩니다. 그런데 뒤쫒아온 바벨론 군대에 잡힙니다.

그리고 자기 눈앞에서 아들들이 죽임을 당합니다그리고 대신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나서 삼손처럼 두눈이 뽑힙니다. 그리고 놋줄로 묶여 바벨론 감옥으로 이송됩니다그리고 죽을때까지 감옥에서 생활하다가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예례미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못들은척, 안들은척, 부인했습니다. 오히려 시드기야는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대신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신들이 애굽(이집트)에게 사신을 파견해 지원군을 요청하자고 했습니다.

물론 이 소식을 듣고 이집트에서 지원병을 갇혀 있는 예루살렘성에 파견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애굽의 군대는 힘을 많이 잃은 상태입니다. 큰 힘을 쓸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바벨론 군대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외에 것을 의지한다면 처음엔 그것이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ç 결국 시드기야는 말씀을 버린자의, 말씀을 떠난자의 최후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sample로 남게 됩니다.

 

1.  여호와께서 진노하심 (3


겉으로 보면 시드기야가 외교정책을 잘못하는등의 모습등이 보입니다. 즉 시드기야는 3가지를 잘못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잘못되었습니다. 둘째, 왕으로서의 줏대도 없었습니다.(대신들에 휘들림), 셋째, 국제정세에 대한 시야가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원인중에 원인은 딱한가지 입니다. è 그가 하나님의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씀을 버리는 순간 그는 멸망의 길을선택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è [주의말씀]을 버리는 순간 그는 []을 잃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떠나는 순간 어두움에 방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시드기야는 여러가지를 합니다. ‘애굽에 도움요청’ ‘모암과 암몬등과 같이 연합군 형성’ ‘대신들의 의견 수렴’ ‘성을 지키고여러가지로 대비했지만 <말씀없이> 이런일을 감행하는 것은 오히려 멸망을 더욱더 자초하는일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빛없이 길없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버리는 순간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 입니다.  (시편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여러분 혹시 [관광]이라는 한국말을 하시죠? ‘관광버스’ ‘유럽관광’ ‘관광버스 춤’ ‘단풍관광등등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놀러다니는 것’ ‘유흥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원래 의미는 볼관, 빛광자<<빛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이 일제시대에 이 말을 이렇게 헷갈리게 했어요. 일본에서 관광단은 흔히 외국에 신사유람단처럼 방문해서, 선진국의 문명을 보고 오는 것은 관광단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러처럼 잘못 이해하여 곡해하게 한것입니다. =è 어째튼 [빛되신 말씀을 보아야 살아날수 있습니다]



2.  시드기야의 비참한 최후 (9-10


도망치던 시드기야 일행은 얼마 도망치지도 못하고 잡힙니다. 그리고 심문을 받습니다. 아마도 이 신문에서 받은 내용은 왜? 유다나라가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기로 하고 안바치고, 배신하여 애굽을 의지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아들들을 죽입니다. 시드기야가 21세에 왕이 되고 11년을 통치했으니 대략 32살 나이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그렇게 크게 성장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아들들이자기 눈앞에서 공포에 휩쌓여 죽게됩니다그리고 나서 두눈이 뽑힙니다. 즉 시드기야가 [그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하는데, 그 말씀을 보지 않으니까 결국은 가장 비참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침 저녁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때에 우리의 복음성가에도 있습니다만 내눈 주의영광을 보네~하는 찬양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볼줄 믿습니다

  시드기야는 가장 마지막으로 본것이 아들들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인생의 마지막 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아프리카의 성자 리빙스턴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침대에서 무릎끓고 기도하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했던  동료선교사가 리빙스턴의 죽은 모습을 보았을때에 기도하는 모습이었다는 것입니.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여러분도 마지막 모습은 성경을 펼쳐놓고 가는 모습얼마나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때 보니 옆에 성경말씀이 펼쳐져 있습니다그리고 그 말씀으로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이 장례식 설교를 합니다. 자녀들은 믿음의 어머니 아버지가 남긴 그 <펼쳐진 말씀> 즉 마지막 까지 보았던 그 말씀으로 은혜받고 평생토록 강건하게 말씀의지 하며 삽니다è 얼마나 아름답니까? 이런 가장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