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
요한계시록 7: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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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1, (9절) 흰옷입은 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 |
여기서 능히 셀수 업는 큰 무리는 앞서 언급한 14,4000입니다. 동서남북 4X성삼위 일체의 3=
12입니다. 12X12=144입니다. 여기에
10X10X10= 1000입니다. 그래서 1000X144=
14만 4천이 됩니다. 물론 상징적인 숫자로서
가장 완전한 숫, 꽉찬 숫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숫자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선택한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숫자’ 입니다.
그런데 이 14만 4천을 오늘
본문에서는 “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라고 했습니다.
è 초대기독교교인들에게 ‘함께하는 사람이 많음에 힘을 줍니다’ ‘또한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 많음에 대한 확신을 줌으로 더욱더 전도하게, 더욱더 사역감당하게
합니다” ç쉽게 말해서 천국경쟁률이 10:1이면 어려워요. 1000;1이면 더 어려워요. 1억:1이면 할만하겠어요.
포기합니다. 그러나 보니가 왠만하면 다 들어간다. 그좋은 곳에… “해볼만 한것입니다” 여러분 초청전도주일입니다.
9-10절을 통하여
볼때에 마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할때에 종려나나무를 흔들고, 자신들의 옷을 벗어 길에 깔며 “호산나 호산나”하던 무리들이 생각나게 합니다. 그런에 요한12장에서 나오는 [종려나무를 들고 예수님을 찬송했던 무리]와 오늘 144000명의 무리들은 똑같이 종려나무를 흔들며 찬송하지만 다릅니다. /먼저요한복음 12장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던 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뜻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때에 가차없이 그들은 ‘자신들이 찬송하던
분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 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오는 144000명의 흰 옷입은 큰무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오늘 계시록에 나오는 무리들은 <죽임당한 어린양을
따라 큰 환난을 통과한 자들>입니다.14절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환난을 어린양 (예수님)과 함께 통과하였기에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흰옷을
입는 비결은 바로 ‘불을 통과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할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물질적인 손해도 볼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시간적인 손해도
볼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때로는 손해도 마다 하지 않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더욱더 희게 되어집니다”
여기서 ‘희다, white’라는 단어는 색깔로 희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결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성들이 결혼을 할때에 왜?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나요?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입으면서 명실상부한 ‘신부의 옷’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은 알버트 왕자와의 결혼식에서 입은 흰 가운과 망토를 썼고, 이후 그의 스타일을 따르고 싶어하는 신부들이
따라 입으면서 대중에 확산됐습니다. <흰색은 정결함의 의미도 있지만, 부유한 신부만 입을 수 있는 옷이기도 했습니다> - 빅토리아 여왕이 흰 웨딩드레스를
선택한 이유 1당대 다른 신부들이 입지 않는 흰색을 선택함으로서 젊은 여왕의 개혁과 혁신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는 게 하나다. 2흰 웨딩드레스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부의 상징’이다. 표백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19세기에는 흰색 옷감을 만들려면 일일이 손으로 물을 빼는 방법 외엔 없었다. 공이 많이 들다 보니 다른 색 옷감에 비해 값이 비쌌고 흰 웨딩드레스를
입는 신부는 곧 부유한 집안의 딸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렇죠. 우리도 어린시절에 흰색옷을 입는 애들은 부잣집 도련님이었죠)
성도들이 물과 불을 통과 할수록, 즉 환난과 시련을 통과할수록 더욱 정결하고, 가치있게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31:23) “무릇 불에 견딜만한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라 그리하면 깨끗하려니와 오히려
정결케 하는 물로 그것을 깨끗케 할 것이며 무릇 불에 견디지 못할 모든 것은 물을 지나게 할 것이니라” è 구약 시대에도
성스럽게 쓰이던 물건들은 전부 불과 물을 지나가게 했던 것입니다. è144000, 큰 무리들, 성도들은 전부 시련을 통과한 자들입니다. 이긴자들입니다. 주후 325년에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때 우리가 지금 하는 [사도신경,삼위일체]의 초안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세계 곳곳에서 온 기독교 대표들이 600명의 대표중에 11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장애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자에게 손 한쪽을, 어떤 사람은 애꾸눈입니다. 어떤 사람은 귀가 없고, 어떤
사람은 절름발이 등등 몸이 성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받았고…그리고 그 어려움을 견뎌냈습니다. 결국 그 상처가 그들의 훈장이 되는 것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리빙스턴, 그는 신학과 의학을 공부했는데
1840년 27세로 결국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1873년 5월 1일 60세의 일기로 소천했습니다. 침대에서 기도하던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사자에게 물려 손에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 몸으로 선교후원을 할때에 많은 사람이 동참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평양 신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금을 했는데, 그중에서 사무엘 마펫 선교사님이 가장 많은 돈을 모금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이마에 상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에 와서… 복음전도하다가 어떤 아이가 던진 짱돌에 맞아 이마에 상처가 있었어요.
그것을 보고 다른 선교사님들보다 더 많이 후원을 해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려움이 있어요. 고난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영광입니다. 오히려 깨끗게되는 과정입니다. 영적인 부의 상징입니다. 이런 신앙으로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