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약처방이 있기전에~
예레미야 18:13 -23 | 6 / 22 토
군인들 사이에서 [전투에서 패배한자는 용서할수있습니다] 그러나[배신자는 용서할수 없는것]입니다. 배신자는 소대장이 즉결처단해도 되는 것입니다. 전쟁중에 우리 부대사람이 적군과 내통하거나 정보를 빼돌리거나 하는 ‘배신자’가 있다면 언제 법원에 서류를 체출하고 판사가와 변호사 검사가 나와서 재판합니까? 그냥 ‘즉결처방’입니다.
다시말해서, 전쟁중에는[적군의 포로]는 살려주지만[아군의 배신자]는 죽이는 것입니다. 한번 신뢰가 깨지고 믿을수 없는 아군은 – 이미 우리군의 비밀을 다 알기에 ‘이론적으로도 살려줄수가 없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을 ‘배신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13절에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14절에는 “레바논의 눈이 아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곳에서 흐러 내린느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즉 저 북쪽이 헬몬산의 만년설이 녹지않듯이,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강물이 마르지 않듯이, 하나님의 만드신 천지만물은<자연의 법칙>을 따라서 운행되는데~ /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은총은 입은 유대나라는 지금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배신했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일단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이 시점에서 노력하지만 부족한 것은 용서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신하면 안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면 안됩니다. 특히 위급한 상황에서, 절박한 판단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해야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일을 선택하는데 ‘나의 손해가 있을수 있습니다’ – 나의 물질적인 손해, 나의 시간적인 손해, 내가 가진 것을 약간 손해볼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등을 돌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가 여러분에게 많은 의구심과 도전을 주는 말씀들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례미야의 입에서 21절에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차라리 굶어죽게 하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넘기시며 (칼에 죽게하시며)/ 그들의 이내들을 자녀들을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죽음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쟁터에 나가서 칼에 맞아죽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선지자의 입에서 <사랑의 말이 나와야지 이런 말이, 이런 기도가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저는 이것을 <극약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말 위급할때는 ‘독약같이 쎈약을 쓰기도합니다’ 아주 급할때는 사약으로 쓰이던 ‘비상’을 쓰기도 합니다. / 또한 심장이 멎었을때는 인공호흡기를 이용하기도하고, 가슴에 충격을 주는 전기충격기를 쓰기도하는데, (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전기충격기 가슴에 사용하면 잘못하면 갈비뼈가 부숴지기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떡하겠어요. – 마지막 방법인데 ‘ 갈비뼈가 부숴져도 심장을 살려야 하지않습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오늘 예레미야 목사님의 이런말을 (극약처방)과도 같은 것입니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안됩니다. 이제 마지막 방법이다 생각하고 쓰는 방법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다 선포하다 안되니까?< 저주 같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 가끔 예수님도 사랑이 많으신데, 바리새인들에게 “이 독사의 자식들아~” 이런 소리를 하신것입니다.
예리미야가 유대의 목사님이었다면, 저는 이시대의 하와이의 목사로서, 가끔 예레미야의 심정이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 저 성도는 너무 일이 잘돼서 에배를 못드려, 너무 사업이 잘돼서 예배를 못드려” 그럴때 솔찍히 “ 그 사업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공개적으로라도 망해야 교회나오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 그것이 마지막 방법이라면 그렇게라도 해서, 예수믿고 천국가야합니다. 회사만 잘되고, 장사만 잘되고, 자녀만 잘키우고 해서 본인은 지옥가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것입니다. è 이것이 오늘 예례미야 선지자가 이렇게 험한말을 하면서 [극약처방]의 말씀을 선포할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지난번 부산 세계로 교회에서 오신 목사님 성도의 집에서 가서 고추밭의 고추를 다 뽑아 버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권사님이 수요, 새벽예배 안나오시니까요? 이모습이 예례미야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우리도 부모님이 어렸을때에 “너 그럴려면 나가 죽어라!” “이런 벼락맞을 자식” “이런 썩을놈들” 그런데 부모님이 ‘나가 죽으라고 해서 나가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 뜻은 “나가 죽지 않으려면 똑바로 해라”는 경고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예레미야의 말씀”은 지금부터 지금부터 2500년전에 유다 백성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이처럼 유다백성처럼 [하나님의 은헤를 배신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말씀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배도 못지키다면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에배순서도 못지키면 말이 안됩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손길이 있기전에 빨리 돌아오면 용서됩니다. 그리고 더큰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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