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는 침몰 하지 않는다
마가복음 4:30-41 | 1/
11 금
1, (30절 ) 겨자씨 한알 같은 하나님 나라 |
수류탄과 같은 폭탄을 만들때에 무엇을
보고 만들었을까요?
세상에 나온 많은 발명품들은 사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보고 만든것이 분명합니다.
비행기를 만들때에도 하늘을 나는 독수리같은 새를 보고 만들었을 것입니다. 헬레콥터는
잠자리를 보고, 코끼리보고 포크레인, 수륙양용자동차 같은 것은 오리를
보고 만들었을 것같습니다. 땅에서 걷기도하지만 물에서 뜨기도 하니가요? 특히 자동차의 앞모습이나 뒷모습은 어떤 동물들의 얼굴을 형상화 했다고 합니다. 한때 아반떼는
부엉이를 형상화 했습니다.
분명히 [폭탄]은 씨앗을 보고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작지만 그 안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줄때에 [씨앗]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겨자씨 한알>에 비유했습니다. 그 의미는 지금은 아주 작지만 결국은 이것이 커서 4-5m까지 자라서 하늘의 새들(하늘의 존재) 품을 정도로 커진다는
것입니다.
씨앗은
반드시 씨앗보다는 큰 것을 만들게 되어있습니다.
이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씨앗보다는 다 큽니다. 호두열매는 마치 호두가 그 씨앗안에 들어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작은 호두 열매를 심으면 큰 나무가 자라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매우작게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역동적으로(Dynamic)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씨앗]일때는 그것이 어떤나무의 씨앗인지 정확히 구분하기가 힘이듭니다.
왜냐하면 씨앗과 그 씨앗이 자란 나무나
열매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기 때문입니다.마찬가지로 처음에 [하나님나라] 혹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신앙]도 저것이 되겠나?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또한 하나님과 관련되어있는 일을 하는 것이 뭐그리 대단한가 생각할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같은 ‘사’이지만 ‘목사’ 보다는 ‘판사, 검사’가 훨씬 낫지요. 권찰보다는 경찰이 낫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무엇이나 대단한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대단한 것입니다. 즉 링컨이 쓰던 만년필
가치로 따지면$100도 안되지만 그 가치는 어마어마합니다.
피가소가 그린 ‘낙서’는 그냥 낙서가 아닙니다.장난아님. 이처럼
누구와 관련되어 있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겨자씨 한알’
즉 ‘풀씨’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 가장 위대한것 입니다. –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알, 풀씨하나 처럼 대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à 오늘 우리가 새벽에 와서 하는 찬송한곡,
드리는 기도한시간 대단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엄청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 =[겨자씨
한알]은 곧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런말 들어 보셨죠. ‘짐이 곧 국가다’
즉 사실은 왕이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왕이 국가입니다. 왕이 죽으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씨왕조가 무너지니까 나라망했어요. 다른나라의 이름으로 세워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실은 [겨자씨 한알은 곧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37-40절 ) 하나님나라를 소유한자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 |
앞서 [작은 겨자씨 한알]이 얼마나 파워풀한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35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여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37절에 보니 ‘광풍이 붑니다’ 그래서 물결이 배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38절에 ‘예수님은 배바닥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 이 여유!!! 그때 제자들이 깨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어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아주
잔잔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비다. 40절에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지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오늘
왜 예수님에 제자들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고 꾸지람을 듣습니까?’
무슨믿음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이 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왜 믿지 못하느냐? 더나아가서는 ‘이 풍랑이 예수님을 가라앉힐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은 어떤면에서 지금 <예수님을 겨자씨 처럼 본것입니다>사실 이들은 예수님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모릅니다. 37절에 보니 “~물이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 즉 물이 가득할때까지 제자들은 물을 퍼냈습니다.
즉 자신의 힘이 되는데 까지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è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부른것] 입니다. 그것도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을 부를때에도 38절에 보니 “짜증과 원망이 섞인 말투입니다”
–“우리가 죽게된것을 안돌아 보십니까?” 즉 “선생님이란 분이 여기 뭐하십니까? 병자도 고치고, 말씀도 잘전하셨지만 정작 자신이 탄배와 당신의 제자들인 우리가 죽게된것은 생각지도
않는것입니까?” ß또한 호칭부터가 ‘주여’가 아닙니다. ‘선생님이여’ ‘랍비여’ 입니다.
예수님 비록 배밑에 주무시는 겨자씨 한알같습니다. 땅밑에 죽은 것 같은 겨자씨 같지만 그안에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이 항해는 누가 시작했습니까? 예수님이
명령으로 시작된 항해입니다. – 그런데 왜-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 항해에서 어떤일이 일어나도 죽지않고 이 항해가 완성될것을 믿어야 했던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음에 대한 꾸중을 들었던 것입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è 여러분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시작하게 하신 여러분의 믿음의 항해는 안전할것입니다. 중간이 풍랑이 칠수 있어요.
그때 오히려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시간이 될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풍랑이 일때가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두려워하지 말 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이 잘믿어지지 않고,
발견되지 않는이유는 바로 ‘겨자씨의 형태’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겨자씨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