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누가복음 2:25-38 |    12/ 25



1, (25) 예수님을 처음부터 만난 사람들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입니다. 정말 [아기예수님]은 어떠하셨을까 너무 너무 궁금합니다. 가끔 아이들을 보면서 겸손해 질수밖에 없고, 바쁘게 살던 삶을 잠시 머물러 갈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생각할때에 [33의 예수님]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기예수님>은 어떠신가 하는 생각하게 됩니다. –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강조하기에 상대적으로 아기예수님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 말고 예수님 자체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리아 없는 아기 예수님요!!

 그런의미에서 오늘 예수님을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특별히 성경에 나오는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중에 목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이름은 몰라요. 그런데 오늘 이처럼 [시므온할아버지][안나할머니]는 그 이름까지 써져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처럼 아기 예수님을 만날수 있을까요? 시므온은 첫째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기다리는 자가 예수님 더 잘만납니다.  기다림은 필수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도 기다림으로 시작됩니다. 3년의 사역을 위하여 30년을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태초전에 예수님을 작정하시고 기다리셨다가 이땅에 보내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은헤]받기 원한다면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본입니다. 축복의 기본입니다. 만남의 기본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이 있어야 만남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므온에 대하여 이미 말씀드린 [기다리는 사람]이란 의미보다 더 소중한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기다렸는가? 위로를 기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위로입니까?<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믿는 이유중에 하는 [자신의 위로를 받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므온은 <자신의 위로> 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개념과 스케일어 다른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안위를 위하지 않고 거국적인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은 [통째]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내 기도만 하면 내기도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국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내 자식이 아니라 타인의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할때에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è 저는 선교사님들 기도할때마다 꼭 선교사님들의 자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공중기도할때도요) 그 이유는 첫재 선교사님들과 그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도 하지만 또하나의 의도는 그것이 내 자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è 제믿음 속에는 [남의 자식위하여 기도할때에] 하나님께서 [내 자식 잘해준다는 것]입니다. // 어제도 어린이들 성탄 연극했습니다. 3곡정도가 연속해서 나왔는데 저는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또한 아이들도 의상까지 갖추어 입으니까 너무 좋아요. 조명과 그 분위가 말이죠. 그런데 그 20의 아이들중에 제 [막내딸]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도 순간적으로 제 딸이 거기 있다는 것을 깜빡 잃어 버렸어요. 그저 모든 아이들이 제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각각아이들의 표정, 율동 등등 그러다 마지막 곡 끝에쯤에 아 내아디도 있지?- 하면서 찾았던 것입니다. // 그때 저는 스스로에게 저를 잠깐 칭찬해 주었습니다. è 그렇습니다. 제자랑이 아니라 이처럼 [나의 위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위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시므온처럼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라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구하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시고, 그리고 귀한 축복을 주시는것입니다.

- 앞으로 우리가 기도의 스케일을 크게 가져야하겠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그릇을 넓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는 동일하게 주시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담겨지는 것이 다른것입니다.  시므온처럼 [스케일이 크게]기도하고, 신앙생활합시다.


2. (36) 안나가 주야로 섬기다가 <마침그때> 메시야를 만남    

  at the very moment! 바로 그때, 마침그때 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안되는 이유는 그 []를 못맞추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는 무신으로 조선시대는 문신으로 태어나야합니다. 그런데 반대가 되면 안돼죠. 때를 못맞추면 [충신이 역적이되고, 역적이 충신]이 됩니다.  사업도 때를 못맞추는 사람은 늘 한물 가고 마지막 끝자리에 창업을 해서 망합니다그것도 전재산을 투자해서 말입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바로그때, 즉 때를 맞추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바로 그때를 어떻게 맞춥니까? 썰물에 배를 띄워야죠. 밀물에 뛰우면 안됩니다.

 그런데 오늘 안나를 보니까? 그때를 맞추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떠나지 않고, 주야로 계속해서 하는 것입니다> 무슨일이든지, 특히 주님의 일을 끝까지 인내하면 주님이 하시기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랑방 축제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2회 초청전도주일이었는데 내년에 3회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계속하다 보면 [그때가 오는것]입니다. 주일전도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때가 오는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성경이 하라는것이면 100% 계속하면 반드시 [마침내 그때]가 옵니다. 오늘 안나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쉬지 말고 내년사역에도 동참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바로 그때 ‘the very moment’ – 꼭 만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